가르치면서

직업교육선진화 방안의 문제점

리치리치샘 2010. 6. 25. 16:54

지난 6월 12일 교육과학부에서 '직업교육 선진화 방안'이라는 시책이 발표되었다.

6월 21일 도교육청에서 학교 관리자와 직업교육담당 교사(실과부장이라고 통칭됨)를 불러놓고 교과부 시책에 도교육청의 시행 지침이라는 것을 하달하였다.

그 이튿날 각 전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긴급 회의를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긴급회의를 통해 내용을 전달받았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는데 다소의 시간이 걸렸고, 대부분의 선생님들 역시 아직도 정확한 방안의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방안의 골자는 이렇다.

 

전문계 고등학교의 진학률이 높아 전문계고로서의 본연의 기능인 취업 기능을 상실했다.

학생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따라서 선호도가 낮은 전문계고는 일반계로 전환하겠다.

기존의 전문계고를 마이스터고, 특성화고, 일반계고 등 셋 중 하나로 체제를 바꾸어라.

체제 전환 후 마이스터고, 특성화고는 취업률을 최고로 올려라. 

 

방안을 여러번 반복해서 읽으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이 있음을 발견했다.

 

1. 대학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기업체에서는 사람을 구하지 못하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OECD 통계를 보면 자명해진다.

 

위 그래프는 대학진학률이다. 2000년과 2006년을 비교한 통계인데,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2009년도 대학진학률이 82%이다. 2006년에 비해 많이 상승해서 현재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OECD 평균보다 높으며,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스위스, 독일보다도 높다.

참고로 전문계 고등학교 졸업자의 진학률은 2009년도에 73.5%로 나와 있다.

 

 

위 그래프는 2005년도 OECD 주요 국가들의 대학입학률과 졸업률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는 빠져있다. 하지만 통념상 입학자는 거의 대부분 졸업을 하고 있으므로 졸업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대다수의 나라들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고 본다. OECD국가의 평균 졸업률은 40%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회의 인적구조상 대졸자는 전체의 40%만으로 충분하다는 뜻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나은 나라들이 대부분 우리보다 졸업률이 하위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 입학 정원은 전체 고졸자의 89%를 수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수학능력이 부족한 학생들이 대거 진학을 해서 졸업을 하면서 그 사람들이 청년 실업자로 고스란히 남고 있다.

실제로 전문계 고등학교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면서 특목고 > 일반계 > 전문계 순으로 서열화되어 버린 고등학교에서 전문계 학생들은 소위 줄만 서면 들어가는 대학의 함정에 빠져 시간과 경제적으로 엄청난 낭비를 하고 결국 백수로 남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응분의 대가를 받고 일하며, 직장다운 직장 환경을 갖춘 회사에서 요구하는 전문계 출신 학생의 능력은 대부분 성적 상위 60% 이내, 결석일수 5일 이내이다. 60%를 넘어가는 학생들은 취업이 거의 불가능해 대학을 가고 있다. 그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 능력을 갖출까?

 

대학의 문은 활짝 열려 있는데 대학을 가지말라는 말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대학은 살아남아야 하니 수학능력이 모자라는 학생들을 마구잡이로 받아주고 있다. 그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고졸로도 충분한 직장으로 가거나 아예 취업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2. 전문계를 축소하는 것은 사회 인적구조를 더욱 왜곡시키게 된다.

산업체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을 전문계에서 키워주지 못하니 전문계 고교를 줄이고, 일반계로 전환하라는 것은 또다른 엄청난 문제점을 일어킬 소지가 있다. 그것은 앞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러지 않아도 넘쳐나고 있는 청년 실업을 가중,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사회구조상 필요한 인력을 전문계가 더 많이 양성해야 하는데 그럴 방안은 내놓지 않고 오히려 더 줄이겠다는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한 결과라고 본다.

2009년도 기준으로 전국의 전문계 학생은 전체의 24% 선이다. 이들 중 대부분이 대학을 진학하고 있다. 2009년도에 진학률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약간 감소하긴 했지만 그 비율은 미미한 정도다. 직업교육선진화 방안에는 24%의 전문계 학생 중에서 70%가 넘게 대학 진학을 하고 있으니 진학비율이 높은 전문계는 차제에 아예 일반계로 전환시키겠다고 한다.

이는 정책적으로 대단히 잘못된 방안이라고 본다. 24%가 고스란히 취업을 해도 인력 수급이 모자랄 판에 진학 비율을 그대로 인정하고, 취업 인구를 구조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사회 인적 구조를 더욱 왜곡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다.

앞서도 지적한 바 있지만 대학 정원을 마구잡이로 늘려놓고 대학 정원은 그대로 둔채 전문계를 구조조정하겠다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직업에 대한 귀천 의식 완화 내지는 타파을 정부가 앞장서서 하고, 문제의 정점에 있는 대학부터 구조 조정을 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를 첫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정책을 꺼내든 것이다.

 

3. 밀어붙이지 말라.

이번 방안은 제목이 방안이지 강압적 조치의 성격이 짙다. 심지어 교육청 회의 자료를 보면 학생, 교사, 학부모, 지역사회의 여론을 반영하여 개편 방향을 잡아라고 해놓고 말미에는 학교가 원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단서를 달아두고 있다.

이는 강제적 병합 내지는 개편이 아니고 무엇인가? 게다가 여론 수렴 과정이 교육의 특성상 몇 년을 두고 심사숙고해도 모자랄 판에 단 열흘도 안되 결정하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행정이다.

가뜩이나 각 분야에서 밀어붙이기 식 행정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터인데 이번 조치도 그런 성격이 짙어서 심히 유감스럽다.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해결책을 엉뚱하게 제시하여 교육계를 또한번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