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이야기

스코어 롤러코스터

리치리치샘 2010. 7. 11. 16:10

어제 창원의 친구가 자기네 동호회 모임에 게스트로 나를 초청해주어 전남 보성CC에 갔다.


게스트로 가면 모든 게 조심스러워진다. 

특히 분위기 등 정신적인 측면이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운동이 골프이기에 나나 동반자나 심적 긴장감을 가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이겨내려면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사실 잘 모르는 사람과의 동반 플레이는 그래서 즐겁지 않게 시작된다.


재미를 위해 약간의 내기를 하기도 하는데 어제도 그랬다. 동반자 셋은 다들 잘 아는 사이였고, 나는 내 친구의 실력과 견주어 간접 비교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적을 토대로 그들은 내게 핸디를 요구했다. 두 사람에게는 10개를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15개의 핸디를 주고 시작했다.




그러나 첫 홀부터 삐끄러지기 시작했다. 드라이버샷이 악성 훅이 나서 언덕배기 위로 날아갔는데, 잠정구를 치고 나가서는 원볼을 찾아 세컨샷을 이어갔지만 이 샷은 길어서 그린을 넘기고, 다시 어프로치는 홀 근처에도 못가고, 왔다갔다 퍼트로 결국 더블보기를 했다.

두 번째 홀에서는 제법 나이가 들어보이는 캐디가 심경을 건드린다. 서비스하는 이의 표정이 아니다. 뭐랄까 아주 귀찮은 손님 만났다는 식의 표정에 말투도 퉁명스럽다. 이번에는 OB에 이어서 아이언샷이 헝클어지면서 쓰리펏까지 해서 트리플 보기.

이쯤되면 라운딩은 끝장을 본 거나 다름없다. 그냥 내기와는 상관없이 마음 편하게 치는 것이 상책이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된다.

홀을 이동하면서 스코어를 견주고 결산을 할 때는 마음을 비우자 다짐을 하지만 다음 홀 공 앞에 홀로 서면 마음이 뒤틀리고, 욕심을 떨쳐버리지를 못한다.

욕심이 스윙에 힘을 불어넣고, 힘은 샷을 망친다.

게다가 동반자 중 한 명도 자기 스윙에 투덜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스코어를 속이는 짓을 한다.


전반 9홀이 악몽과도 같았다.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심정. 일곱번째 홀을 벗어나면서 이제 전반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였다.

전반홀의 스코어는 핸디 회수는 고사하고, 공동 꼴찌.


후반홀 들어가기 앞서 앞팀들이 줄을 서있어 대기 시간 동안 막걸리를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서 말이다. 같이 온 다른 일행과 즐겁게 담소하면서(라운딩을 해본 사람도 있었다) 마음을 추스렸다. 이미 스코어는 회복 불능지경에 빠져버렸고, 즐겁게 치자는 생각을 하고 후반에 접어들었다. 

드라이버샷이 악성 훅에서 드로우로, 아이언도 그럭저럭 맞았다. 그런데 예의 캐디는 여전히 투명스럽고 건망지기까지 한 행동을 한다. 120미터에 거리에 8번을 들고온다. 맞바람이 강한 것도 아닌데 피칭웨지를 써야할 판에 눈치없이(유능한 캐디는 몇 홀만 지나면 각 플레이어의 아이언 비거리를 안다) 9번도 아니고 8번을 들고와서는 이 클럽을 써야 그 정도 거리를 보낼 수 있지 않느냐는 식이다. 이럴 때는 꾸지람을 해야 하고 클럽을 바꾸어오도록 해야 한다. 거리 판단과 클럽 선택은 플레이어의 몫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전반 홀에서 백에서 클럽을 빼내들은 사람은 캐디가 아니라 내가 거의 다했던 것 같다. 그러니 캐디가 모를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예의 동반자는 또 한번 스코어를 속인다. OB에, 제멋대로 드롭, 다시 헤저드에, 그러고도 파(PAR)를 했단다.

핸디 준 것 회수는 포기하고 더 이상 지출은 억울하다는 심정이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보태줄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운딩치고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희한한 라운딩을 했다. 스코어도 엉망이었지만, 마음도 편치 못했고, 그걸 극복해볼거라고 나름대로 애를 써본 조치들도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골프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무리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보려고 해도 더욱 좋지 않은 쪽으로 치달아가는 일이 우리네 삶에서도 종종 있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이번 라운딩은 역설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대단히 교훈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