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풀어야할 숙제들
2010년 4월 4번째 외국인 근로자 및 다문화가족 초청 잔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새밀양로타리클럽에서 주최하는 이 행사에는 200명이 넘는 외국인 근로자와 한국으로 시집을 와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주부와 아이들이 참석했었다. 나는 지인의 부탁으로 첫 회부터 동영상 촬영 봉사를 했었다.
이 자리에는 유난히 많은 필리핀인들이 참석했다. 적어도 인원수 면에서는 태국이나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보다는 배 이상 많았다.
사실 이미 방문해본 적이 있는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 호감이 있어 그 쪽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시도해봤었는데, 그들은 내가 조금 할 수 있는 영어를 거의 알지 못했다. 진작에 필리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얘기들을 나눠볼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내년 이 잔치에서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필리핀 현지에서 만나서 대화해본 사람들의 상당수는 우리나라나 일본으로 가서 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들은 꿈꾸고 있었다. 이른바 코리안 드림으로 표현되는 그 꿈. 그 꿈의 중심에는 돈이 자리잡고 있음은 말할 것이 없고.
2차대전 이후 비슷한 시기에 해방되어 한 동안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섰던 필리핀이 더 이상 경제적 성장 동력을 잃어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마닐라에서 클락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광활한 평야, 사방을 둘러봐도 멀리 점처럼 보이는 산이 두어 개 있을 뿐 넓디넓은 그 토지를 갖고서도 왜 그들은 평균 월수입 10만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일까?
어쩌다가 만난 스무 살의 한 여인은 한 살박이 아들을 마닐라에 두고 돈벌이를 위해 200km 정도 떨어진 동네에 와서 살고 있었다. 한국으로 가고 싶어 외국 노동을 신청해 놓았다고 하는데 신청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무소식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런저런 상상 가능한 방법들을 얘기해주었지만, 종합적으로 보건대 그 여인의 한국행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했다.
코리안 드림은 한류로 대표되고 있기도 했다. TV 방송 예고 프로그램에 한국 드라마가 소개되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드라마 주몽과 Rain(비), 동방신기, 손담비 등의 가수나 배우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식 극장 레트스토랑 긴따로(金太郞)이란 곳에서 저녁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금영노래방 시설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부모들처럼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자식 공부 뒷바라지에 열중하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 대학 진학률이 70%에 이른다고 하는데, 졸업률은 입학자의 절반도 안된단다.
오토바이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개조되어 사람이나 짐을 나를 수 있도록 바퀴를 하나 더 달아서 트라이시클이 되어 있었고, 미군 지프를 개조해서 한 스무 명 정도 탈 수 있는 버스로 개조된 화려하지만 엉성한 지프니가 우리가 말하는 승합차나 버스의 숫자보다 훨씬 많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12시가 넘은 한밤중에도 지프니나 노선 버스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른 아침에는 학교가는 아이들이 거리를 채우고 한 밤중에는 스무살을 넘긴 이들이 길거리를 쏘다니고 있었다.
필리핀은 미국처럼 총기를 소지할 수 있다. 그래서 총기를 이용한 사고가 많단다. 공권력은 힘이 약해 상점은 사설 경비업체에 의뢰해서 드나드는 손님의 몸수색까지 하고 있었다.
도시에는 시골에서 올라온 앳된 아이들이 매춘계로 빠져들고 공공의 업무에는 어느 곳에서는 비리와 부정이 판을 치고 있는 나라.
이 나라가 어떻게 이 난제들을 극복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뜨거운 교육열, 해외 파견 인력의 경제적 수입 축적 이러한 일련의 발바둥이 정치적 안정과 공공의 정의 회복, 국민들의 단결력과 합쳐진다면 가능성은 있어보이는데...
시간이 꽤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