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생활

실명과 비실명 - 인터넷 문화를 다시 생각한다

리치리치샘 2009. 6. 11. 09:25

최근 시골 소도시에서 일어난 성폭행 관련 사건을 바라보는 네티즌들의 시각을 보면서 과연 인터넷 문화가 어떻게 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아니할 수 없다.

 

경찰의 포상을 노린 무리한 수사와 섣부른 발표가 문제였지만, 판단력이 약한 네티즌들이 떼거지를 형성하여 소중한 개인의 명예를 난도질하고 무고한 기관을 폄하하거나 모독하는 등의 행태를 스스럼없이 자행한 것은 인터넷 강국으로서 갖추어야 할 모범적인 문화와는 거리가 먼 것 같아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다.

 

일부 실명을 전제로 한 사이트에서 혐의자 및 혐의자의 친구로 보이는 이까지 포함해서 무고한 사람까지 포함된 많은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마구 유출되었고 이것이 비실명을 전제로 한 사이트를 중심으로 마구 퍼나르기가 되어 사건의 본질은 간데 없고 왜곡되거나 허위가 보태진 것이 사실로 판정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소위 혐의자의 여친이라고 매도된 일부 여학생과 전혀 상관없는 여성까지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어야 했고, 학교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본좌는 몇년전에 **고를 졸업하고..."로 시작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논리적 판단력이 부족한 일부 네티즌에 의해 유포가 되면서 눈덩이처럼 살이 붙어 모 국회의원의 아들이 가담되었다느니, 빽없는 사람은 살 수 없는 세상이니 하는 사회 결속을 해치는 망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게 된 사실이다.

70-80% 학생이 방송국을 좌지우지할 만큼의 힘을 가진 고위층의 자제라면 그 학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학교일거다. 아니 세계적으로도 그런 학교가 있던가? 이후에 이어지는 그 자의 '전언'은 이 논리를 바탕으로 한 것이므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임을 잠깐만 헤야려봐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네티즌이라고 하는 존재의 실상이 이와 같은 비논리성에 동의하는 무리라면 그 네티즌은 '시민'이 아니다.

오히려 건전한 시민들을 이간질하는 독소이다. 기실 수없는 욕설과 그에 상응하는 댓글들을 보면 그 멤버로 활동하고 있는 절반 이상은 짐작컨대 청소년층이거나 갖 성인에 들어선 사람들로 믿어진다. 이것은 우리의 인터넷 문화 형성 역사에 기반한 가정이다.

비실명을 토대로 운영되는 몇몇 토론장을 개설한 사람들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회원 구성비를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을 터인데 성과 같은 민감한 문제를 그들에게 맡겨 토론하는 일이 사리에 맞기나 한 것인지.

혹시 운영자의 개설 의도가 상업적 목적을 두고 회원이나 확보하자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지나 않은지 의심스럽다.

 

대한민국은 여타의 나라에 비해 '소돔과 고모라'가 아직은 적은 것으로 믿고 싶다. 우리 사회의 변화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긴해도 아직도 부모는 자식에 대해서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어른을 경외할 줄 아는 젊은이가 그렇지 않은 젊은이에 비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구적인 성향이 없지 않은 이 소도시의 경우는 다른 도시에 비하여 보다 완고한 과거지향적 문화를 가지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 소도시의 시청 홈페이지 인구 조사 수치를 가지고 유추를 해보면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은 모두 합쳐서 500-600명선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수구적인 성향을 전제로 해서 보면 40명이라는 숫자도 못미더운 수치인데 110명 운운하는 이야기는 가히 상상조차도 힘들다.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지면 그 결과가 이해할 수 있을만한 것으로 밝혀지겠지만, 어쨋든 현 시점에서 보면 이것 역시 믿기 어려운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일부 네티즌은 이 비율을 바탕에 두고 또 흥분하고 있는 것을 본다. 도대체 일말의 판단력이 있긴 한지 모를 일이다.

 

처벌을 받아야 할 범법자는 마땅히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공신력 있는 국가 기관에서 하는 것인데도, 몰지각한 네티즌들은 마치 자신이 나서서 처벌할 것처럼 대들고 있는 형국이다.

몇몇 인권 단체와 진짜 권력과 영향력이 있어보이는 '고위층'이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겠다고 하고, 이 지역의 유관 기관이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의 결과를 두고 '네티즌의 승리'라고 자찬하면서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현상도 본다.

 

온갖 루머와 위해 속에 휘돌려 돌아가는 네티즌들의 광분은 실로 우려되는 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 지경이 계속 되면 사회의 기본 질서와 기강이란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허물어진 질서와 기강 속에서 네티즌 자신이 자신이 만든 족쇄에 채이는 결과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몇몇 비실명 사이트에서는 벌어지고 있는 제3자끼리의 싸움질이 이러한 우려를 가능하게 한다.

 

이번 네티즌들의 광분에 가까운 작태를 계기로 우리는 인터넷 질서 재편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저분해질대로 지저분하게 변질되어 버린 문화를 바로 잡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명이 비실명에 의해 매도당하는 현실은 분명히 바로 잡아야 한다.

 

감히 제안하건대 모든 사이트 운영자들은 자발적으로 실명제로 전환하고,

입법 기관에서는 상황의 심각성을 빨리 깨닫고 제 입으로 하는 말, 전언하는 말(펌)들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네티즌들이 인터넷 강국을 끌어갈 수 있도록 법제화하기 바란다.

 

- 2004년 12월에 쓴 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