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이야기

싱글로!!

리치리치샘 2009. 6. 16. 09:52



2주 연속 주말 라운딩. 

집사람에게 골프장 간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여느 집안이든 다 비슷하겠지만 아내는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과도한 출장을 경계한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보따리 싸들고 나가면 하루 종일이니 골프 과부 신세 거부 의사도 있으리라. 
그런데 라운딩을 주선해본 사람은 안다. 라운딩 약속은 하나님과의 약속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을. 부킹 과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주선자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것인가를 한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게스트가 되든 동반자가 되든 간에 약속을 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약속은 신중해면서 단호해야 한다. 참여하겠다 안하겠다를 확실히 해야 하고, 하겠다고 했다면 하늘이 쪼개져도 가야한다. 주선자의 입장에서 보면 궁색한 변명을 하는 사람이 많아 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9월 7일, 일요일, 평소에 잘 알고 지내고 있지만 라운딩은 한두번 혹은 한번도 못해본 사람들이 동반 라운딩을 요청해왔을 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골드그린. 오후 4시 10분 티업. 
지난 주에 경주 CC 라운딩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밀양의 확실한 싱글 몇 명 중에 한 사람이면서 인품이 무난해보이는 현대차 대리점 김 사장과 그 친구들 틈에 나의 자리를 비워둔 상태여서 그 어려운 청을 아니 받아줄 도리가 없어 경주까지 갔었다.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약간의 부담이 있었지만 퍼브릭이라는 점이 그나마 과도한 부담이라는 느낌을 다소 완화시켜주었다. 
그런데 집사람에게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반응은 명약관화 그 자체였으므로. 약속은 깰 수 없고, 아내 결제는 쉽지 않고... 
2시 반 출발인데 2시까지 머뭇거리다가 겨우 통보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난리가 났다. 엄청난 반향을 뒷통수로 맞으면서 서둘러 가방을 챙겨 도망쳤다. 

가는 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찝질한 기분으로 공을 치면 그것이 바로 스코어로 나타나게 마련인 게 골프 아니던가.  속으로 떨쳐버리자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지만 출발전 연습장에서의 공은 제멋대로 날아갔다. 

첫 홀과 두번 째 홀에서는 우려했던대로 해서는 안되는 더블보기! 
전기공사하는 설 사장은 특유의 경험을 바탕으로 OECD라는 다소 생소한 내기를 제안해놓은 터라 내기 부담까지 겹쳐서 공이 마음먹은 대로 날아가주질 않았다. 
천만다행으로 두 홀을 지나자 드라이브가 기분 좋게 맞아 나갔다. 이 때부터 경기 그 자체에 몰두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동반자의 경기력도 어느 정도 파악이 된 상태였고(현대관광 김 사장, 공인중개사 변 사장은 보기 플레이어에 근접하려고 노력 중), 내기 규칙도 대강 이해가 되었다. 결국 한 타 한 타 신중하게 치는 것 외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되었다. 

결과는 비록 퍼브릭 코스지만 처음으로 싱글을 쳤다. 
버디는 연속으로 2개를 잡았고, 서비스 홀에서는 이글까지 잡았다. 전체 타수는 76타. +4 였다. 

전체적으로 롱아이언이 좀 불안했지만(파3에서 물로 한 번 보냈다) 드라이브나 어프로치 특히 약점인 퍼팅이 잘 받쳐주었다. 이글은 5-6미터 정도의 롱퍼팅을 캐디 없이 스스로 판단해서 일구어냈다. 
OECD라는 내기 규칙은 잘 치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버디나 이글의 경우는 상금을 다 털린 사람은 구제를 받지만 나머지에게서는 소위 생살을 뜯는 것이어서 등위가 선두이면 수익은 {3홀 한 세트 * 6} 동안 1위 3, 2위 2, 3위 1, 꼴찌 없음이라는 식의 상금 배분에서 꽤 짭잘한( ) 수익을 보장해 주었다.
기금 제외하고 6만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그늘집 계산, 캐디피 일부, 캐디 팁 2만, 밀양 도착 후 이글 기념 한턱까지... 

거리가 짧고, 페어웨어가 좁긴 하지만 평평하고, 그린 역시 큰 어려움이 없으며, 9홀을 두 바퀴 도는 코스이기에 정규홀에 비하면 적어도 4타 정도 적게 나오는 코스이긴 하지만 싱글이라는 스코어를 처음으로 기록했다. 

100돌이에서 90타 깨고, 80타로 진입하는 등 넘어야 하는 타수는 숫자 자체로서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한 번 어렵게 여기던 관문을 한 번이라도 통과하게 되면 정신적인 면에서 큰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라운딩은 의미를 두고 싶다.
- 2008년 9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