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5일 양곤에서 네피도로
미얀마에 파견근무하고 있는 친구는 네피도(Nay Pyi Taw) 근처 예진(Yezin)에 사무실과 거처가 있다.
출발 전에 몇 번의 어려운 이메일 교신으로 알려온 바에 의하면 한국에서 양곤까지의 항공편보다는 양곤에서 네피도까지의 미얀마 국내 이동이 더 시간이 많이 걸리고 어려울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설마했다. 반신반의했는데 친구는 거두절미하고 '양곤까지만 와라,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했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던 나로서는 친구 말만 믿고 따를 수 밖에 없었는데...
네피도는 2005년 갑작스럽게 옮겨간 미얀마의 새 행정 수도이다. 말 그대로 행정 수도. 관공서만 덩그랗게 들어서 있고, 길은 편도 2차선 이상 12차선까지 광할하게 닦여 있었지만 정작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는 이상한 도시였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공무원들이었고. 공무원 중에서도 고급 공무원의 비중이 높은 곳. 따라서 양곤에서 네피도로 가는 항공편이 있긴 했지만 외국에서 예약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미얀마에서 예약을 한다해도 2일 이상 대기 후에도 탈동말동이니 친구가 거두절미하고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던 의도의 진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미얀마 최대도시 남쪽의 양곤에서 제2도시 중북부 만달레이(Mandalay)를 이어주는 고속도로가 얼마전 개통되었다. 행정수도 네피도는 양곤과 만달레이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고, 양곤에서 200마일 정도 그러니까 320Km 정도 거리다.
호텔에서 어중간한 한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네피도로 출발했다.
양곤 시내를 벗어나는 길을 쉽지 않았다. 이정표가 제대로 정비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친구의 최신형 차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었다. 있다해도 소프트웨어가 없어 무용지물이겠지만. 체류한 지 벌써 3년이 되어가는 친구도 마치 미로찾기하듯이 양곤 시내를 겨우 벗어날 수 있을만큼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었다.
고속도로 입구에는 톨게이트가 있었고 통행료를 선불로 받고 있었다. 전자식이 아닌 인쇄된 종이 영수증에 체크를 해서 다시 건네주는 걸 받아 톨게이트를 통과후 고속도로 한켠에 차를 세웠다. 친구는 시내를 벗어나는 운전에 꽤나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그리고 가야할 남아 있는 길에 대한 대비책으로 먼저 휴식을 취했다. 휴게소는 양곤과 네피도 중간 100마일 지점에 딱 한군데 있다는 말을 하면서.
네피도까지 가려면 우리의 고속도로라면 시속 100km로 세 시간 남짓 소요될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 이상이 걸렸다. 편도 2차선 콘크리트 포장이었는데 노면 상태는 건설업을 하는 동행자에 의하면 B급 정도라고 했다. 많이 덜컹거렸고 특히 콘크리트 양생 단위별로 높낮이 차이가 많아 엉덩이가 의자에서 떴다내려앉는 앉은자세 뜀박질을 자주했다.
획장을 감안해서인지 비포장 갓길이 포장면 만큼 여유가 있었고, 그곳에는 100 -1,2,...7 하는 식으로 거리가 표시되어 있었다. 즉 양곤으로부터 100마일하고 7분의 몇 하는 식으로 1마일을 7등분한 검은 글씨 거리표시를 한 하얀 비석들이 늘어서 있었다. 왜 7등분을 했을까? 7진수를 쓰나? 모를 일이다.
어쨋든 그 길에는 차가 거의 없었다. 오토바이도 다니고, 사람도 걸어다니는 이상한 고속도로였다. 더 가관인 것은 개들이 심심찮게 횡단을 하고, 때론 고속도로 위에 주저앉아 놀고 있다는 것.
길 양쪽은 평지 혹은 낮은 구릉지의 연속이었다. 거의 개발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땅이었다. 바위는 커녕 돌도 보이지 않는 마사토, 군데군데 어떤 용도로 파내었는지는 알 수 없는 마사토 절취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민가는 몇 마일에 하나 정도 띄엄뛰엄 보였고, 마을은 몇 십 마일만에 하나 정도 보였다.
미얀마의 인구밀도는 평방킬로미터당 70명 선, 그나마 5년 이상 이전 자료고 정확한 수치는 아니라고 한다. 우리나라가 속이 꽉찬 새 비스켓통이라면 미얀마는 한 두개 남은 정도라고나 할까?
100마일 휴게소에 도착했다. 상하행선에 따로 휴게소가 있는게 아니라 하나의 휴게소로 상하행선이 함께 사용하고 있었다. 차양이 쳐져 있는 주차장에는 바닥에 상호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몇 안되는 음식점들의 전용 공간이란다. 즉, 해당 상호의 공간에 주차를 하면 그 상호의 음식점에 들러야 한다는 식이었다. 감시 요원도 있었다. 이 나라가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있는 나라던가? 아닌데? 얼마전까지 사회주의 체제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시스템이다.
빵과 음료수 정도만 구입을 해서 다시 차에 올랐다. 점심을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 11시 경이었기에. 네피도에 가면 문베이커리라는 한국인 경영하는 식당이 있다는 친구 말에 거기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온만큼 더가야 하는 길을 재촉했다.
그런데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차창을 때리기 시작한다. 좀처럼 가늘어지지 않는다. 얼마 안가서 고속도로 위에 빗물이 흥건히 고이기 시작했고, 예의 높낮이 다른 노면으로 웅덩이가 되어 있는 곳도 더러 있었다. 이전까지 속도계는 90에서 100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140에서 160km로 달리고 아니 날고 있었던 것. 그 속도로 달리다가 물고인 웅덩이를 만났다. 정말 아찔했다. 차가 심하게 요동치고 방향을 순간적으로 잃고 허둥댄 후 놀란 친구는 속도를 60에 맞추고 크루저 버튼을 눌러버렸다.
네피도 톨게이트를 통과한 직후 다시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도시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우거진 수풀, 논, 그리고 대규모 상수도 시설 공사장, 사방을 둘러봐도 그것들 뿐, 저멀리 지평선과 맞닿은 하늘에는 먹구름이 소나기를 내리 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