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 만에 대학 과동기 친구로부터 문자가 들어왔다.
"8월 31일 창원 논두렁밭두렁에서 모인다. 참석할 수 있나?"
느닷없다.
그러고보니 31년이 흘렀다. 대학 졸업한 해가 1981년이니.
한 세대가 흐른 뒤의 모임이니 당연히 가야겠지?
모임 시간과 참석할 친구들을 확인해볼 요량으로 문자 보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많이 오기로 했다. 장소는 니가 정보 전문가니까 알아서 찾아와라."라고 한다.
도교육청 인근임을 확인하고 차를 몰고 갔다.
몇 명이 졸업을 같이 했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남자 동기들은 그래도 얼굴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여자 동기들도 제법 와있다.
여자 동기들은 자세히 들여다보고 기억을 더듬은 끝에 겨우 이름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한 친구가
'학교 다닐 때 야하게 놀았어' 한다.
나도 거들었다.
'난 2학년 때부터 야하게 놀았지.'
그 말이 끈이 되어 오래 묵어 약간 닫혔던 대화의 문이 열렸다.
기실은 '야하게'는 '야학에'를 일컫은 거고, 당시 제법 많은 동기들이 야간학교 선생 노릇을 했었다.
'이 선생이 가장 큰 수확을 얻었지. 부인을 거기서 만났으니까'
나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이런저런 지나온 이야기들이 엄청 쏟아진다.
이제 몇몇은 교감 혹은 장학사가 되기도 했고, 진로상담교사 혹은 수석교사가 된 이도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 내 신발장(보통은 호봉순으로 배열한다)은 맨 윗줄에 있다. 연장자순으로 보면 이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동기들도 마찬가지일거고.
'근가1호', 우리 동기들의 호봉이다. 순차적으로 올라가던 호봉이 끝나고 새로 시작되는 호봉. 이쯤되면 또다른 졸업이 가까와지고 있다는 의미다. 동기들도 모두 공감한다.
손자 본 친구들도 있다. 몇 년 안에 다들 손자, 손녀들을 볼 것이다.
참석하지 못한 친구들 이름을 들먹이면서 다음 모임을 기약하다가 음식점을 너무 오래 차지 하고 있다는 눈치가 들어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