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자로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 바뀌었다.
이전 교장 선생님은 교감으로 정년을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6개월 간의 교장 공백이 있어 직무대리로 6개월을 채우고 교장 명함을 얻어 퇴임하셨다. 그리고 오늘 날짜로 진짜 교장 선생님이 부임을 해오셨다. 실질적인 권한과 비전으로 학교의 최고 책임자 역할을 할 분으로는 6개월 직무대리 교장 선생님은 빼고 이전의 장 교장 선생님 이후 오늘 부임하신 김 교장 선생님인 셈이다.
학교의 교장은 그 학교의 수장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면서 권력과 권위는 사라져가고 있고 대신 봉사와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 교장들은 수장으로 소위 '돌격 앞으로'를 외치는 막강 권력을 발휘하곤 했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권력은 내세우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는 풍조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런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는 일부 수장에 대한 이야기다.
나와는 평소 교육적 소신이 많이 다른 교장들이 더러 있었다. 30년 가까운 교직 생활 중에 젊었을 때는 나만의 패기로 덤벼들기(?)도 했지만 20년 정도를 지나면서는 표정만 보아도 알고 말 몇 마디만 들어보아도 교육적 소신이 어떤 것인지를 안다.
예전의 교장들은 주로 '교장인 내가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이니 내 결정에 따르라.'라는 기조를 유지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 앞 과정에서 반드시 직원 및 학교 이해 당사자 간의 충분한 협의와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사전 공감대라는 것이 별반 없었다.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군대식 상명하달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학교가 수요자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교육도 일종의 서비스로 탈바꿈을 하면서 교장들의 권위는 많이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많은 교장들은 결정권이라는 무기를 내세워 꺼져가는 권위의 불씨를 지펴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면도 없지 않다.
근간에 모셨던 교장 한 분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생각된다. 월남전 참전의 기억을 대단한 삶의 교훈으로 여기는 분이었는데, 너희들의 생명은 나에게 달렸으니 나를 무조건 따르라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 분의 소신이나 경영 방침이 시대착오적인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푸른숲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배정받은 예산을 집행함에 있어 그 분은 숲보다는 화초에 집중해서 제법 넓은 그래서 상당히 교육적으로 멋진 공간으로 꾸밀 법도 한 학습원을 잡다스러운 꽃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반도 모양의 연못도 파헤쳐 수초 몇 포기 놓으면 될만한 자그만한 연못으로 바꾸어버렸고, 꽃이 지고 나면 이 화단은 그야말로 아리조나 사막과 같은 황량함의 극치를 보여주게 변모시켰다. 이 과정에서 몇몇 선생님들의 조언을 얻는 듯 했지만 조언을 구하는 척만 했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생각대로만 시행해버렸다.
전문계고등학교의 위상을 아주 낮게 평가해서 학생들의 교육내용 및 교육과정을 무시하거나 자신의 생각대로 뜯어고쳐 전문계인지 일반계인지 구분이 안되도록 흐트려놓았으며, 실습실을 축소 폐쇄하는가 하면 학생들의 기본적인 IT관련 자격 취득 조차도 무용론을 강변하면서 무관심 영역에 방치시켰다.
학생들의 자신의 능력이나 적성, 가정, 경제적 능력 등을 고려할 여지를 주지 않고 무조건 대학 진학 쪽으로 밀어붙여 진학률 80%를 자랑스럽게 내세우곤했다. 대기업 취업자는 현수막을 걸지 못하게 했고,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대학진학자를 합격한 대학 이름별로 열거(요즘 대학전형은 이중, 삼중 합격이 가능)한 현수막과 홈페이지 배너를 1년 내내 붙여놓기도 했다. 결국 일부 학생들을 내세워 학교의 이름을 홍보한답시고 대다수의 학생의 삶을 혼란 속에 빠뜨린 결과를 낳은 것이다.
워낙 달변가였던 그 분은 한 사람을 붙들고 한 두 시간은 족히 설교(!)할 줄 아는 능력이 있었는데 3년여를 근무하는 동안 나름대로 소신을 가진 교사들은 그 분 근처에 가는 것 차체를 꺼렸을 정도였다.
나는 그 분에게 전문계 고등학교의 '정체성' 문제를 제기했다가 혼이 났고, 특성화 사업을 하면서 많은 부분에서 마찰을 빚었으며, 학생들의 비디오 촬영 동아리를 운영하면서도 싸움 비슷한 것 해보기도 했다. 결국 그 분 임기 후반기에는 내심 그 분이 떠날 때만 기다리는 자세를 취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의 생각에 반론 제기 조차도 불허했던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복지부동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3년반의 임기를 갖고 있는 새 교장 선생님이 부임을 했다. 한 학교에서 근무한 기간은 길지 않지만 오랫동안 친분이 있는 분이기에 적어도 '소통'은 가능하리라 본다. 적어도 '야전사령관'은 아니기에 민주적인 학교 운영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앞서가고 있는 서구 사회가 그렇듯이 학교가 학생의 성장을 돕고,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곳이라는 성격을 잘 알고 실천해오신 분이라 여겨지기에 기대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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