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하자마자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다.
한 학생이 불치병에 걸려 목숨이 거의 말기에 접어들었단다. 올해 열아홉살인데 말이다.
이 아이의 언니는 내가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 와서 제자 하나 건졌다고 생각했던 착실하고 영특한 아이였다.
가정 사정을 잘 모르는 나로서는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보질 못하고 그져 그 아이가 원하는대로 진학했으면 했다. 결과적으로 국문과를 선택해서 학교 잘 다니고 있는 걸로 여기고 있었던 터다.
그런데 아니란다.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단다.
동생이 있는 줄을 몰랐는데, 그 동생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데, 담임 말로는 목 부위가 부어올라 병원에 진단을 받아보라고 오래 전에 얘기 했단다.
무슨 영문인지 병원에 가질 않았던 모양이다. 최근에서야 병원 진단을 받았는데 말기까지 닿아버린 모양이다.
엄마는 아이의 병을 병원에서는 모른다고 한다는데, 요즘 병원이 어디 옛날 어스럼한 그런 병원인가? 모를 리가 없고, 엄마가 숨기는 듯하다고 담임이 전언한다. 그토록 되기까지 엄마는 뭘하고 있었는지, 아버지가 멀리(!)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 아버지도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 것인지.
가정 붕괴의 또 다른 희생자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일찌감치 알았더라면 그 언니를 취업시켜 동생 진단비라도 댈 수 있도록 했을텐데 그러지를 못했다는 것이 회한이 된다.
경제적으로 소위 차상위계층으로 분류되는 어정쩡한 계층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것 같다.
가진 게 원래부터 없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이혼을 하고 그래서 가정이 무너지고, 내버려지다시피 한 아이들이 아무런 희망도 품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진로를 결정해야 할 어느 시점에 가서는 불쑥 나타나서 무조건 대학에 보낸다고 한다. 대학 보낼 형편이 안되어보이는데 취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하면 짜증섞인 표정으로 원서나 써달라고 한다.
형제가 많을 때는 형이 동생을 공부시킨 예가 많았다.
요즘은 많아야 달랑 둘인데, 부모 입장에서는 남들 다시키는 대학을 못시킨대서야 무슨 부모 체면이 서겠는가 하는 생각을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부모가 정작 자식을 성년이 되도록, 자립할 수 있도록 터전을 마련해줄 수 있는 상황인가를 따져보면 의외로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아이를 이모에게 맡기고는 정을 끊어버린 한 아이가 심야에 오토바이 뒤에 탑승하고 가다가 뺑소니 차에 충돌당해 나가떨어져 목숨을 잃은 예가 얼마 전에 있었다. 그 가슴 아픈 이야기가 가슴에 남아 식기도 전에 이번에는 불치의 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도록 내버려둔 이야기가 들려 사람들이 왜 이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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