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는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루어지며, 동시에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평가자는 평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평가영역에 대한 사전 지식이 풍부해야 하고, 상황에 대하여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해야한다.
이는 평가의 상식이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산주의와 닮은 체제를 갖고 있는 곳이 공무원 사회라고 하였다. 공무원의 복지부동, 무사안일한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른 경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열심히 해도 그 월급, 안해도 그 보수라면 안하는 쪽이 편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일에 따른 보수가 나눠먹기 식의 공산주의와 다른 점이긴 하지만 그 보수라는 것이 정해진 시간, 정해진 업무에 한정될 때 보수의 성격은 공산주의 체제와 다를 바 없다. 여기서 파생되는 비효율성이 공산주의의 병폐가 되어 체제 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경쟁심을 도입하여 성과를 유도하고 성과에 대한 덤의 보수를 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성과급이다. 그 근본 취지는 누가 뭐라고 하든 바람직하다. 하지만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또한 평가 영역과 척도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모두에서 언급한 평가의 상식이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공무원 사회 특히 교육계에서 성과급 제도에 대한 문제점 지적이 많고, 반발 또한 예사롭지 않은 점은 교육계만이 갖고 있는 특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평가자를 다양화한 소위 다면평가제도가 다른 분야에서도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교육계는 다면평가제조차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교육이라는 것이 근본적으로 물건을 만들고, 상품을 판매하는 등 가시적인 분야가 아니라는 데서 기인한다.
생산 현장에서는 생산품의 수와 질, 상품\ 판매에서도 마찬가지로 판매고와 소비자 만족도 등으로 비교적 명확하게성과를 평가할 수 있다. 이를 교육계에 대입시키면 수업의 질, 학력 향상, 학생 상담 및 인성지도,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 등 영역으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내놓은 것이 교원능력평가제이다.
시범 운영 운운하더니 갑자기 전면 시행으로 뱡향을 바꾸어 올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교원능력평가제는 현실적으로 평가의 근본 상식도 제대로 적용되지 않은 채 인터넷을 통한 전산 처리로 결과가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동료교사, 학부모, 학생 등 세 부류의 평가자의 평가를 평점으로 환산하여 매우 우수, 우수, 보통 등등으로 매김한 결과를 개인에게 통보하고, 미흡한 점은 자구책을 마련해서 보고하라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동료교사는 수업과 학생 상담에 초점을 맞춘 여러 개의 항목에 대하여 평가를 하는데 문제는 평가 기회가 평가를 할만큼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인의 생각으로는 적어도 1차시 분량의 '평상시' 수업을 서너 차례 참관해야 어느 정도 평가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데, 실제로는 거의 모든 학교에서 1-2차례 정도에 불과했고, 사전에 준비가 많이 된 소위 시범 수업이었다는 점에서 평상시의 수업과는 거리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학생 생활과 관련한 상담 및 지도 항목도 동료가 동료를 눈여겨 면밀하게 살펴보지 않으면 안되는 영역인데 대강 '감'으로만 평가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학부모의 경우 수업 참관은 1-2차례이었고, 그마저 본인의 생업을 제쳐두고 바쁜 걸음으로 나와서 한 두 시간 수업 참관만으로 평가를 하였다는 사실 자체가 진정한 평가의 기준에 합당한 것인지 의문스러우며, 한 분이 전 교사를 평가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맡은 학급 및 교사에 대해서면 평가함으로써 객관성을 상실하였으며, 부모님들의 대부분은 교육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평가의 방법으로 합당치 않다.
학생의 평가는 참고자료로만 활용한다고 했는데 그 '참고' 때문에 교사들은 적지않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생각된다.
학생들의 만족도는 동료교사 및 학부모의 평가와는 다른 평어들이 나온다. 학생의 생각은 학생의 생각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생각보다는 감성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다의 기준이 아니라 기분 좋다, 나쁘다가 기준이 되는 것이 학생 또래의 특징이다. 이성적 사고력이 덜 성숙된 아이들에게는 당연하다고 볼 수 있는 특성이다.
어른들은 서술형 응답이 부담스러워해서 응답 자체가 별로 없는데 비해서 아이들은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고 단지 그들의 '기분'을 적어놓은 놓는 경우가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한 서술형 응답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겠지만, 가르치는 제자에게서 비천한 속어가 섞인 평을 받았을 때의 교사가 받는 충격은 적지 않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현실적으로 교사는 학생 지도 외의 온갖 잡무에 시달린다. 학습 및 인성 지도 외의 잡무에 때문에 정작 평가 항목에 대하여 매진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는 그렇게 하지 못하는 측면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도 교원 평가의 한계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평가는 어떤 사안이든 반드시 필요하다. 평가에 의해 새로운 대안이 나오고 개선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의 방법은 신중해야 하고, 그래서 작금의 평가처럼 졸속으로 시행되어서는 아니된다. 필연적으로 평가는 성과급으로 이어질 것이고 이로 인해 교직 사회는 혼돈 속에 빠져들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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