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뻐근하다. 장단지가 굳어 걸을 때마다 굵은 나무 막대기가 들어앉아 삐거덕거리는 느낌이다.
어제 바쁜 걸음으로 시골에 가서 감자밭 잡초 뽑는 작업의 여파다.
병원에 입원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수술 후의 극심한 통증과 무력증에도 불구하고 시골의 농사일을 가늠하시면서
'텃밭하고 곰골 앞 밭에 감자 심어놓은 거 비닐 벗겨주어야 할낀데...' 하시던 말씀을 즉시 접수하고 1주일 전쯤에 아내와 함께 갔다.
싹은 드문드문 나 있었다. 빨리 싹을 틔운 놈도 있었고, 감자씨 넣으면서 파놓았던 작은 웅덩이 습기만 머금은 곳도 많았다. 다음에 온다해도 1주일 뒤일 터라 숨이 막히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작은 싹도 일일이 찾아 새 생명이 오롯이 세상을 맞이하게 해줄 요량으로 조그만 구멍을 뚫어 놓았었다.
그제 무안 맛나향 고추축제가 열리던 첫날 초등학교 총동창회 이사회에 참가했다. 말 그대로 많은 않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작은 마을 여남은 개가 들어앉아 있는 골짜기 밀양시 무안면 중산리, 웅동리, 가례리 출신들이 모이는 자리. 내 달 총회를 앞두고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기실 이 동창회는 응집력이 너무나 공고해서 총동창회를 하면 500명 이상 참석하는 조금은 희한한 구성체이다.
그 이유가 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같은 풍광 같은 토양에서 고만고만한 어린 시절을 공유하고 자랐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들을 만나면 나는 항상 내 어린 시절의 경험의 밑천이 상대적으로 초라함을 느낀다. 특히 농사일과 관련해서 그렇다.
어제는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 대여섯 명이 만나기로 약속되었다. 오전에 문자로 모임 통보가 배달되어 왔고, 나의 일정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제 모임 참석에 노인복지센터에 모셔놓은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얼굴색은 많이 좋아졌지만 늘 하시는 말씀은 빼놓지 않으신다. 여기와 있는 사람들은 얼마 안있어 저 세상으로 갈 사람들이라고. 그 말씀을 하실 때면 나는 아버지는 그 분들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설명과 함께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귀가 어두운 아버지를 두고 고함에 가까운 소리로 긴 이야기를 할 수 없어 그냥 가벼운 웃음으로 댓구하고 만다. 어제도 그랬다. 요양원 근무자들은 아버지를 병자로 여기고 음식 등 모든 것을 통제한다. 요양원 측의 조치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따질 상황은 아니다. 아버지가 건강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른 입원자들과는 당신이 전혀 다르다고 착각하고 계신다. 몇 번 딸기를 사다드렸는데 요양원 사람들이 딸기를 주지 않는다고 투정이다. 요양원 사람들은 음식을 가려 드시도록 조절하고 있다고 한다. 몇 주 전에 사촌이 백도 통조림을 사다 드렸는데 포장박스가 침대 옆 머리맡에 덩그러니 얹혀있어 대여섯 개나 되는 통조림을 아껴드시는가 보다 했는데 그제 확인해보니 빈통이다. 머리맡에 있고 냉장고에 넣을 필요가 없어서였는지 온전히 혼자서 다 드신 모양이다. 더 사다드릴까요 여쭈니 답이 없었다. 무응답은 사다달라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복숭아 통조림을 사들고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원을 거쳐 감자밭으로 향하는 도중에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소리는 완전 잠김에서 어느 정도 트였지만 힘은 여전히 부족했다. 허리와 목 디스크 수술 후 보호대를 두르고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진 지 두 달이 다되도록 농사일을 마음에서 놓지 못하고 계신다. 감자밭 말고도 두어 가지 더 숙제를 주셨다. 쌀 가마니와 소금 포대를 살펴보고 옮겨놓으라는. 거기다 텃밭에 있는 두릅 새순 잘라서 나물 해먹으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집으로 가볼까 하는 생각으로 아버지 저하고 집에 보실랍니까? 제안을 드리니 고개를 가로 젖는다. 갔다가 바로 올 일을 뭣하러 가나 아예 짐싸들고 가면 모를까 하는 투다. 통조림을 빈 박스에 채워드리고 시골 집으로 향했다.
쌀 가마, 소금 포대를 대강 덮어두고 텃밭에 갔다. 텃밭에 심어놓은 감자는 제 각각이다. 새 순이 제법 굵은 줄기로 변해 있는 놈도 있고, 새 순 그대로 꽤째째한 모습으로 머물고 있는 놈도 있고, 아예 싹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놈도 있다. 그런데 심상찮은 문제가 생겨 있었다. 감자밭에 감자 아닌 새순들이 상당한 기세로 비닐을 밀어올리고 있었다. 잡초들이었다. 더러는 냉이며, 파, 유채 싹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쓰잘 데 없는 잡초들이었다. 그 세가 감자를 능가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감자 싹 숨통 틔워주었더니 잡초들이 신이 났다.
감자 싹과 잡초를 구분해주어야 할 판이었고, 이 밭은 감자밭이므로 일체의 불순 세력을 제거해주어야 하는 일이 더 보태졌다. 그나마 텃밭은 10여미터 짜리 서너 줄이어서 일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문제는 곰골 앞에 있는 밭.
한 고랑이 20-30미터 쯤 되는 것이 열댓 개 있는데 이곳의 잡초들은 텃밭보다는 세가 덜했지만 장차 큰 세력을 형성할 기미를 농후하게 보이고 있었다. 호미를 가져갔지만 일에 서투른 나로선 호미보다는 손이 먼저 갔다. 약속된 시간은 다가오고 예기치 못한 잡초를 만나 약속 시간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잡초들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면서 솜통 틔우고 잡초 움켜내기 계속했다. 한 30분이면 다 해낼거라고 예상했지만 서너 고랑도 해결 못한 상태에서 몸으로 느끼는 시계는 이미 그 시간을 넘겨버렸다. 시계라고는 휴대폰 밖에 지니지 않은 상태, 그 휴대폰마져 차에 두고 일을 시작한 터라 시계를 볼 여유도 없이 잡초들을 움켜쥐고 뜯는 처절한 싸움을 했다.
잡것들이다. 지겹도록 많은 잡것들. 그 알토란 같은 붉은 돼지감자 볼려고 심어놓은 밭에 불청객들이 둥지를 틀고 더 큰 세력으로 토양분을 삼키고 있는 그것들은 만고에 쓸모 없는 것이라 미운 정도가 아니다. 이것들을 한 방에 싹 없애버릴 방도가 없을까. 그 생각을 수십 번도 더하면서서 연신 앉았다 섰다 굽혔다 폈다를 반복할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세상에는 잡것들이 참 많다. 감자밭에 감자보다는 잡초들이 더 기승을 부리듯 내 의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데 쓰잘 데 없이 앵겨드는 사람들이랑 상황들이 얄미운 세상이다. 온전하게 탈없이 여생을 보내고 싶지만 병마란 놈이 달려드는 것도 그렇다.
젊은 시절 온갖 고생을 다하고 그 끝에 얻은 '골병'. 내 어머니 아버지가 겪고 있는 인생 후반기의 신체의 뼈대를 흔들어버리고 있는 골병의 연유. 그것은 이 아들 딸들이 잡초 노릇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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