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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면서

도화지만큼 얇은 사람

리치리치샘 2009. 6. 11. 09:32

계락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이 생기는 전쟁터에서 계략은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다.

하지만 일상사에서 그러한 계략은 수많은 적을 만들 수 있고,

오히려 자신의 존재를 갉아먹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나는 어제 지역의 한 문인 모임에서 계략으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다.

1년 가까운 세월을 나는 그 사람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지내왔었다.

사과할 일(엄밀한게 말하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만)이 있어서 그랬다.

찾아가 인사하고 사과할까도 생각했다.

우리네 살아가는 공간이 너무나 좁기도 하거니와

그 사람의 앞길에서 내가 잠시 추춤거렸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멀티적인 일상에서 과거의 별스럽지 않은,

절반 이상의 빈말이 섞일 인사는 뒷전으로 밀리어 왔었다.

 

인사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는 가려서 사람을 만나는 사람이었다.

과정이야 어찌되었던 결과적으로 자신의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은 철저하게 은폐하는 사람이었다.

명예욕에 불타 사회적 명함을 절대신처럼 여기는 사람이었다.

 

좋은 글은 뭇 사람을 감동시킨다.

좋은 글이 그 사람의 인품과 결합이 되면 그에게는 자연스런 존경심이 유발되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글은 글일 뿐,

인품은 전혀 다른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지역의 유지가 되고 싶어 안달이었고,

학연, 지연을 신주 모시듯하는 시대착오적인 언행을 거침없이 쏟아냈었다.

 

두 번째 약속마져 내버리고 찬 공기를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본 밤하늘은

그 사람이 휘저어 만들어낼 세상만큼이나

캄캄했다.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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