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독립 전쟁은 앞서의 영국과 프랑스의 영역 다툼에서 영국이 프랑스를 물리치면서 미국 땅의 소유권을 확보하고 얼마되지 않아 일어났다는 사실은 대부분 다 알고 있을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모피 등 교역에 관심이 많았고 영국은 땅 확보에 관심이 많았다. 따라서 영국 이주민의 숫자가 뜨내기 무역상 집단인 프랑스인에 비하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정착에 대한 의지의 차이로 사람이 많았던 영국이 땅을 차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영국은 내부적으로 왕당파와 의회파(공회당파)가 세력을 겨루고 있던 상황이었고,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많은 군비를 사용한 탓에 금전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 문제는 영국은 미국 이주민으로부터 걷는 세금으로 충당 혹은 만회하려고 했다. 차(Tea)를 비롯한 각종 공산품에 높은 세금을 매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인지세를 만들어 놀이카드를 비롯해 신문 등 모든 인쇄물에 세금을 물려 미국 이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이 원성은 결국 자급자족이 가능함을 믿은 독립주의자들에 독립 의지를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
보스턴 차 파티(Boston Tea Party)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보스턴 항에 정박 중이던 영국 차 운반선에 잠입한 미국 이주민들은 선적되어 있던 차를 바다에 폐기해버렸고, 이 사건이 독립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이 주도한 미국 이주민 연합군은 영국군과의 수차례에 걸친 전쟁을 통해 결국 영국군을 물리쳤다. 토마스 제퍼슨은 미국 독립 선언문을 초안했다."
역사는 요약하면 이렇게 간단하게 기술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독립 전쟁의 역사는 위 문장에 약간의 수식어가 더 붙는 정도일 듯하다. 하지만 그 전개 국면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미쳐 알지못했던 복잡한 양상들이 얽혀 있었다.
여기서 언급하고자는 바는 좀더 상세히 기술된 글에도 좀처럼 읽어낼 수 없는 미국 원주민(인디언)과 흑인 노예에 관한 이야기다.
인디언의 입장
"기원전 3만 4,000년 경부터 3만년 경까지의 사이에 氷河시대가 한창일 때에 지구상의 물의 대부분은 방대한 대륙빙원에 들어 있었다. 그 결과 베링해는 때로는 지금보다 수백 미터나 내려가 있었고, '베린지아'로 알려진 연육교가 아시아와 북아메리카 사이에 나타났다. 베린지아는 가장 넓어졌을 때에는 넓이가 약 1,500 킬로미터에 달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축축하고 나무도 없는 이 툰드라는 풀과 다른 식물류로 덮여 있어, 초기의 인류가 수렵을 하던 큰 짐승들이 모여들었다.
북아메리카에 처음 건너온 사람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대륙에 온 것도 모르고 이곳에 왔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아마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이 수만년 동안 그러했던 것처럼 사냥감을 좇아 시베리아 연안을 따라 이동하다가 연육교를 건너 이곳에 왔을 것이다.
알래스카로 건너온 이들 최초의 북아메리카人들이 큰 빙하들의 사이를 지나 남하하여 지금의 미국땅에 도달하기까지에는 수천 년이 걸렸을 것이다. 북아메리카에 초기의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기원전 1만 2,000년 이전의 믿을 만한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컨대 최근에 발견된 알래스카 북부에서의 수렵군의 망보는 곳의 흔적은 그 시대의 것일는지 모른다. 또 뉴멕시코의 클로비스 근처에서 발견된 섬세한 솜씨의 창 촉도 그 시대의 것일는지 모른다."
<출처 : http://www.americanhistory.or.kr/book/files/h-frame.htm >
유럽 백인 이주민 쪽에서 보면 버려진(주인 없는) 지역에 와서 땅을 일구고 정착한 것이 대단한 모험이며,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과 성취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수만 년을 살아왔던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큰 시련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이주민에게 삶의 터전을 잃어갔고 유럽인이 가져온 천연두 등 각종 새로운 질병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게다가 이젠 저희들끼리 전쟁을 벌여 그 틈바구니 속에서 때로는 영국 왕 편에, 때로운 이주민 독립파에, 때로운 프랑스 혹은 스페인 편에서 눈치를 보며 삶을 이어갔던 것이다.
흑인 노예의 입장은 어때 했을까?
아프라카에서 백인들의 주도면밀한 작전으로 앞잡이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납치되어 물건처럼 팔려서 중미의 노예 매매 거점항으로 팔려온 이들은 다시 미국의 남부 농장으로 팔려가 농사일을 비롯한 가정부 등등 소위 3D 업종에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자들이었다. 그들은 다시 백인들의 주도하에 촉발된 독립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이쪽저쪽 눈치를 보면서 살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때로는 백인 주인의 아들 대신에 참전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집안의 경우 직접 관련없는 전쟁이라고 해서 전쟁과 관련없이 농사 등의 일을 계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식있는 흑인들은 비록 배우지 못해 교양이라고는 갖출 수 없은 형편이었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은 깊은 간절함으로 온몸에 배여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고로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힘 약한 자들의 비애는 그냥 비애라는 말 한마디로 요약되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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