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수능 시험 감독을 했다. 감독이야 매년 하는 거니까 별스러운 것은 아닌데,
어제는 마지막 시간 감독을 하면서 참으로 착잡한 심정을 어찌할 수 없었다.
수능시험의 정확한 본디말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즉 대학에 가서 얼마만큼의 능력을 발휘하면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미리 테스트해보는 것이다.
'예비고사'로부터 시작된 이 시험의 근본적인 역할은 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수능시험으로 바뀌면서 시험 내용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를 테스트해보는 것에서 종합적인 사고력을 가졌느냐, 문제 해결 능력은 어떠하냐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일반 우리 국민들은 대학을 가기 위한 통과 시험 정도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가 대학을 가려면 반드시 치르야 하는 시험이고, 이 시험을 통과하면 어찌했든 간에 대학에 간다는 공식을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대학은 지금 포화상태다.
저 지난 주에 대구의 아시아대학교라는 곳이 파산 후 공매에 나왔다는 소식이 있었다.
대학이 망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대학 진학율이 고졸자의 90%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니 대학을 안나오면 정상적인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전 국민이 대학을 나와야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구조인가?
하기 쉬운 말로 죄짓는 사람이 없으면 경찰, 판사, 검사, 변호사, 교도소 직원 등등이 무슨 필요가 있냐?
이들 직업들은 죄짓는 사람 덕분에 있는 거 아닌감?
죄짓는 사람은 사회에서는 필요악이다.
죄짓는 사람을 없애버린다면 사회는 엉청난 구조 변화를 일어킬 것이다.
결과적으로 웃기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제 도둑질, 강도질을 비롯한 온갖 인간 자질이 저질적인 부류들도
대졸자들일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 사회는 이미 사회구조상 대졸자는 동년배의 25%가 적당하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학의 정원부터 대학 진학 희망자 비율까지 이 수치에 기준해서 움직이고 있다.
영국의 경우 대학 재학생에게 등록금을 거의 받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가 너희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라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남들 일해서 돈벌고 있는 4년여 동안 너희들은 공부를 더해서 졸업한 후에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야하니 돈내고 공부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 나라는 아직 사회 구조에 대한 분석, 그에 따른 학교 구조의 체계화, 나아가 학생 진로 지도에 대한 바람직한 지도 등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오늘도 취업을 하겠다던 어떤 학생이 와서 아버지가 진학을 하라고 해서... 하면서 전문대학 회계과에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전문대학 회계과를 졸업하면 어떤 직장을 얻을 수 있는지?
사무실 경리직이 예상되는 직업이다.
경리직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전화 받고 컴퓨터로 자료 입.출력하고 은행 심부름 가고...
결론적으로 대졸 학력이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학부모나 학생들은 막무가내로 대학 진학 쪽으로 줄을 선다.
어제 4교시 시험에 나는 1명의 학생을 감독하였다.
감독은 나 말고도 3명이 더 있었다.
그 학생은 120분 시험 시간 내내 교실을 헤매고 다니면서 지겨워죽겠다고 난리를 피웠다.
시험 답안에는 1번부터 끝번까지 한 줄로 마킹을 했다.
정신 지체자였다.
그 아이가 친 시험이 바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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