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으로 기억된다. 해외 교류라는 경험에 참여하고 싶은 열망에서 알콥에 들었던 때가.
알콥 멤버 1기 다음으로 난 2기에 아내와 함께 선발되었다. 영어 인터뷰를 거쳐서 어렵게 얻게된 하나의 멤버쉽이었다.
그후 아내는 몇 번의 국내 행사에 참여하면서 시간상, 여건상의 한계로 더 이상 활동을 하지 못하고,
나는 상당한 열정으로 그러한 한계를 억지로 밀치고 활동을 계속했다.
컨퍼런스 때 프로젝트 주제 발표를 영어로 한 것을 계기로 이후 국제 교류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실행위원이 되어 전국 알콥 교사 멤버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일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실행위가 알콥 멤버의 의사를 대변해주는 과정에서 몇 가지 트러블이 생기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슈는 알콥은 교사 집단이니 교사가 실무를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알콥-T(교)를 비롯해서 학생, 스폰서를 아울러 총괄하던 사무국과의 시각차이가 커지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2년 정도 잠잠하던 사무국은 작년에 기존의 알콥을 거의 무시해버리고 새로운 알콥 멤버를 모집하여 새출발을 한다는 취지를 내세우면서 소위 물갈이를 해버렸다.
실행위원 중 극히 일부 두어 명만 남기고 막말로 다 잘라버렸다.
뿐만 아니라 그간의 해외교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제법 노련한 사람들까지도 제외시켜버렸다.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알콥 멤버로서 국내 컨퍼런스, 워크숍 등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고,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해외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우리 집에 모처럼 모인 이들은 그 봉사활동을 한번씩 같이 했던 사람들이다.
그 때의 경험이 우정이 되어 지금도 모이자 하면 모인다.
경북 예천에 사는 한 멤버는 연락이 닿자마자 과메기를 준비해왔다.
김해 사는 멤버들은 그에 맞춰 조리 구색을 갖추어주었고.
조리에 필요한 양념이 어떤 것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허둥댄(아내는 중국에 가 있었다) 나는 그들로부터 서슬퍼런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거의 자정이 다되도록 많은 환담을 하면서 말미에는 교사가 가질 수밖에 없는 국제 교류 활동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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